저는 최근에 책 한권을 샀어요. 21년 윤여정씨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떠들석 하던 시기에 다른 한 쪽에서는 '이슬아 작가'의 편지로 떠들석 했어요. 문학동네를 통해 연재된 이슬아 작가와 남궁인 작가의 편지에서 이슬아 작가가 아주 멋지게 낭궁인 작가에게 위트있는 한 방을 먹였거든요. 하지만 저에게는 위트있는 한 방보다 그 뒤에 있는 문장 "편지라는 수신자가 확실한 서간문에서 어떤 발신자가 될 것인가."이 강한 인사이트를 줬어요. 수신자가 명확한 글은 수신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글'이에요. 수신인을 향한 깨끗하고 온전한 애정은 발신인으로 하여금 수신인이 궁금하고 수신인이 알고 싶고, 수신인의 이야기를 듣고싶으니까요. 문득 '레터'를 달고 있는 많은 뉴스레터들, 아니 좀더 뾰족하게는 '동글레터'는 수신인이 명확한 편지를 보내고 있는지 고민해봅니다. 선뜻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왜 이 컨텐츠를 굳이 동글레터가 다뤄야 하지?, 이걸 왜 동광교회 청년들이 읽어야하지?"라는 고민으로 동글레터를 만들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이 궁금하고 여러분 중에도 님의 요즘이 궁금합니다. 대체로 답장 없는 편지가 되겠지만 그래도 여러분의 요즘은 안녕한지 묻는 우리의 이 질문이 가끔은 여러분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 에디터 브라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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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님은 '신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목사님들이 공부하는 학문? 하나님을 공부하는 학문? 성경을 공부하는 학문? 교회를 공부하는 학문? 다른건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공부하지 않을 학문? 이 중에 하나는 오답이에요.
네!1 여러분도 자연스럽게 떠오른 바로 그 답!! "일단 나는 공부하지 않을 학문"이 오답이에요. 제게 신학을 처음 가르치신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신앙은 생활이고, 신학은 '신'앙을 위한 '학'문이다." 라고요. 그니까 신학은 우리가 신앙인으로써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학문이라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히브리어 '하말티아(ἁμαρτια)-죄'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는 것을 말해요. 내가 몰라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것도 '죄'에 속한 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것이 우리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못하는 슬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가까워짐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에요. 결국 신학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렇게 살아가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 신학이 필요하고 꼭 목회자가 아니어도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유익해요.
그러나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기 어렵고 두려웠던 이유는 신학도 학문인만큼 많은 부분이 고도화 되었기 때문에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면 포기해야할 까요? 아니요!! 우리에게는 우리를 친절하게 신학의 길로 인도해줄 분들이 계시죠!! 바로 우리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계신 목사님들이에요!!
신학강의는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많은 목사님들이 님의 신앙생활에서 마주하는 고민과 궁금증을 신학적으로 접근해 함꼐 고민해주시는 시간이에요. 동광교회에서 사역하셨지만 다른 부서를 담당하셔서 청년들을 만날 시간이 적었던 우리 교회에 숨은 보석같은 목사님들을 앞으로 신학강의를 통해 만나볼 예정이에요.
첫 시간은 유년부에서 사역하고 계신 강성진 목사님을 만나요. 혹시 지난 동글레터의 설문지를 기억하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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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주제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의 종류와 제사의 의미들이 궁금해요."
“레위기 16장의 속죄제와 예수님의 십자가" _ 강성진 목사님
“레위기”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너무 지루하고, 성경 1독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성경’이라는 인식이죠. 하지만 성경의 모든 내용이 중요하겠지만, 성경 66권 중 중심이 될만한 것을 고르라면 단연 “레위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다섯 살이 되면 토라(모세오경) 중 레위기를 가장 먼저 가르친다고 합니다. 성경의 모든 화와 복의 기준이 되는 문서가 무엇인지 말하라면 “레위기”이며, 예수님의 구원사역(십자가)이 이루어진 근거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레위기”라고 대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상 “레위기”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짧은 이 글이 그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레위기를 펼쳐보는 동기부여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레위기 16장 “속죄일”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연관성을 살펴보며, 그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분량의 한계가 있으니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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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속죄소에 뿌려진 피, 예수님의 몸에 흐른 피
우리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우리를 그 피로 적혀 우리 죄를 사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우리 몸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 흘러내리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더러운 죄와 부정이 다 씻겨나가는 것이죠. 이런 이미지로 구약의 제사, 죄를 위한 제사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짐승의 피가 사람의 몸에 뿌려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미지(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에게 뿌려지는 이미지)는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속죄일에 드리는 제사를 보면 수송아지와 숫염소를 피를 뿌리는 예식이 진행될 때, 그 피는 성소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즉, 성소의 휘장 안, 지성소의 속죄소에서부터 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소 안의 분향단 그리고 성막에 있는 번제단으로 이어지게 됩니다(레위기 16장 14~20절).
왜 속죄제사 제물의 피가 그곳에 뿌리도록 명령하셨을까요?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복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레위기 16장 1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더렵혀진 곳, 죄와 그 죄의 영향력이 모이는 곳이 지성소의 속죄소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룩한 성막안의 지성소, 대제사장 외에는 출입이 제한되었던 곳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그 곳이 더렵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짐승의 피가 뿌려진 곳이 바로 지성소의 속죄소였다는 것입니다. 성막(성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더렵혀진 곳이 정결하게 되며, 그 정결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부정이 씻겨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성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2장 19~21절)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힌(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자들을 내쫓으시고, 표적을 보이라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십자가 사역(속죄 사역)을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 8장 12절)
모든 인간의 죄가 성전되신 예수님의 육체를 죄로 더럽히며, 그 모든 죄를 대속하고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자신의 몸에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대속의 사건을, 레위기에 행해진 속죄제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모든 인간의 대표로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넘어 인간의 모든 죄로 인해 부정해진 성전으로서,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그 죄의 부정을 가지고 자신의 육체에 자기의 피를 뿌리시므로 속죄의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16장의 속죄제는 예수님이 자기 몸에 흘리신 자신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이들의 죄와 부정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표이며, 완전한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향하여 가도록 가르쳐주신 제도입니다.
또한 우리 몸에 예수님의 피가 흘러 내리는 경험이 없이도 우리가 죄에서 구원 받고, 부정함에서 거룩을 얻을 수 있는 이유가 속죄일의 제사처럼 예수님이 자신의 몸에 흘리신 자신의 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죄 사함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사역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은 근거는 예수님이 그의 몸에 그의 피를 쏟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전가되고 그 죄의 부정까지도 스스로의 몸에 피를 쏟으시므로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가 바로 레위기에 예표되어 있으며, 예수님이 이루신 완전한 제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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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죄와 부정은 지성소로 모이고, 의와 거룩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흐른다.
앞서 속죄소에 피를 뿌리는 행위가 속죄소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모든 죄와 부정이 속죄제물의 피로 말미암아 죄와 부정의 제거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개인의 속죄가 아니라는 것을 레위기 16장의 속죄일의 속죄제는 가르쳐줍니다.
“이는 너희가 영원히 지킬 규레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 년에 한 번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레위기 16장 34절)
일상적으로 행하여지는 속죄제가 있음에도 하나님을 속죄일을 정하여 속죄제를 지내도록 하셨습니다. 1년에 한 번 이 제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제사를 통하여 의와 거룩은 한 개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단지 그들 각각의 개인의 죄와 그로 인한 부정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죄악은 그들이 사는 땅을 더럽히고, 그들의 성전을 더럽히며, 그것이 지성소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죄와 부정을 해결하기 위하여 지성소의 속죄소에 피가 뿌려지고, 이후에 성소의 분향단에서 그리고 성막과 제단에 뿌려지게 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부정이 나은 결과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 죄와 부정으로 더럽혀졌으므로 속죄일의 속죄제는 그 모든 죄를 위한 속죄제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을 우리는 우리 각 개인의 구원의 문제로 국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17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한일서 2장 2절)
예수님은 나 “개인”만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속죄제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한 “개인”의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구원의 역사는 온 세상을 향한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온 세상”, “세상”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더렵혀진 세상,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그 영향력이 “개인”의 영적 구원에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영역에도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속죄일의 속죄제는 이스라엘 공동체,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으로 흐르는 의와 거룩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레위기 16장의 속죄일은 레위기 25장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오십 년째 해의 희년을 지내고 그 때에 속죄일을 선포하며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레위기 25장 9~10절)
오십년 째 속죄제를 드리는 그 날에 행해지는 속죄의 사역은 자유와 속죄의 선포였습니다. 속죄하심으로 얻은 은혜가 “개인”이 아닌 그 민족과 그곳에 속한 모든 자를 향해,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과 세계를 향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으로 구원을 받음은 우리 각 “개인”에 그 구원이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레위기를 통해 보게 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장 18~19절)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루신 의와 거룩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향하여 흘러가도록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나 “개인”의 천국가는 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회복과 변화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율법과 언약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를 입은 현시대의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내 개인의 영적 자유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구속의 은혜가 세상과 우리 삶의 터전을 변화시킬 것임을 우리의 삶과 선포를 통해 드러내며 흘려보내야 합니다. 의와 거룩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부터 흘러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며, 그 사역의 자리에 우리의 삶의 현장이 위치해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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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6장에는 지금 이 글 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아사셀 염소 등). 다 담을 수 없어 아쉽지만, 이 짧은 글이 레위기를 다시 펼쳐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사역을 알고 볼 때 레위기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과 은혜를 더욱 선명하게 우리에게 비춰줍니다. 레위기는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의 완성이 어떤 모습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 삶의 지평을 더욱 풍성하게 하길 소망합니다!
[참고자료]
김근주, '오늘을 위한 레위기', IVP.
김경열, '레위기의 신학과 해석'. 새물결플러스
앨런 로스, '거룩과 동행', 디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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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이의 앞광고
앞으로 어떤 진로를 가야하는지, 내 적성에 맞는 일은 무엇인지 많이 고민되시죠? 예전에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저희 수학 선생님도 늘 같은 고민을 하셨어요. 이 다음에 퇴직하고 뭐하지?
여러분, 이제 그런 고민 혼자 하지마세요/ 교제국에서 그런 고민을 같이 할 시간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저희 수학 선생님도 교제국과 함께 했다면 그런 고민 좀 덜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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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청년생활 - 직장/직무 편 👩🎨👨🏫 >
희망하는 직무에 대한 질문과 고민은 쌓여가고 있는데, 속 시원하고 정확한 조언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진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멀리 가지 마시고 여기로 오세요!
이번 교제국에서는 동광교회 청년부 내에 같은 학과/직무로 함께 묶인 청년들이 고민하는 취업/진로를 함께 나누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선배의 조언도 듣고, 또 다른 새로운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 절대 놓쳐서는 안 되겠죠?
단순한 컨설팅이 아닌, 신앙적인 도전이 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고 다양한 청년들이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사전 설문에 참여해주세요!
📅일시 : 2월 19일, 26일 청년모임 시
🙋♂️문의 : 교제국장 조인혁 (010-3427-2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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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우리 교회는?]
2월 22일 (수)
- [청년부] 수요 리더모임 오후 8시, 3층 유년부실
2월 24일 (금)
- [청년부] 중보 기도 모임 오후 7시 30분, 5층 청년부실
- [교회] 금요 철야예배 오후 9시, 2층 사랑성전
2월 27일 (주일)
- [청년부] 청년부 주일 4부 예배 오후 1시 50분
- [청년부] 슬기로운 청년생활 - 직장/직무 편, 청년부 예배 후
Pray for 🇹🇷 🇸🇾
- 최근 대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 튀르키예를 위한 구호물품을 받습니다. (외투류, 부츠, 장갑, 목도리, 양말, 속옷, 침낭, 겨울의류, 기저귀, 보온병 등)
- 보내실 곳 : 인천 중구 자유무역로 107번길 20, 304-306호 (박찬영 전무 010-8146-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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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요일 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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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교회 청년부 미디어국 뉴스레터팀 dkyouth.media@gmail.com 서울시 동작구 성대로 1길 26 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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