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부터 기도할 것인가
자, 복습을 마쳤다면 우리는 오늘 진도를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칭 다음에는 무엇이 나와야 할까 요? 예, 이야기의 내용입니다. 대화의 내용이 나와야 할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아빠 되시는 하나님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요? 오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좋을 것 같고, 나한테 필요한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빠라서 아는데요. 아빠들은 그런 거 되게 좋아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의 내용을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읽어 볼까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가만히 살펴 보면 이 내용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기도의 대상이 구분된다는 것을 발견하셨나요?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첫번째로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 3가지>와 <우리에 대한 내용 3가지>로 되어 있다는 것 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내용이 구분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더 나아가 이 구조를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에 대한 내용>을 기도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에 대한 내용>으로 먼저 기도하기를 가르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우선순위(Priority)가 있다 고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우선순위’라는 말을 알고 있을 겁니다.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더 긴 급하고, 더 중요하고, 앞의 일이 뒤의 일에 영향을 끼칠 때 순위가 결정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가 하 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도 행복한 좋은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이 순서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탁월한 신학자이자 기독교 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워어스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한번 읽어 봅시다.
“먼저 그 기도로(하나님에 대한 내용) 기도하기를 배우고, 그 기도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기도하고, 그 기 도로 당신의 삶(우리를 향한 내용)을 전향시키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게 될 것이다. 우리의 도덕적 삶은 예배를 통해 빚어진다. 즉 우리의 윤리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부산물 이다” - 스탠리 하우워어스,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中
정리를 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내용>으로 기도할 때 <우리에 대한 내용>이 하나님 안에서 달라 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나)의 필요’에 대해서 기도하고 싶지만, ‘하나님에 대한’ 기 도가 우선순위에 있어야 함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많이 들어 보았을 마태복음 6장 33절이 말하 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겠지요?
-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선순위’가 되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이 지면을 통해서 살펴보고, 다음 주에는 <우리에 대한 내용>을 살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도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예수님은 가장 먼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를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먼저 <이름>을 생각해 봅시다. 지난 주에 살펴 보았던 것처럼 우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바로 그 사람을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배준영>을 떠올리는 순간 제 존재는 여러분에게 인식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리는 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관계가 되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적 이름인 <여호와(야훼)>라는 이름도 있구요.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을 강조하는 ‘엘로힘’이라는 이름도 있고, 만물의 소유와 지배를 드러 내는 ‘아도나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또다른 속성을 드러내는 ‘여호와 이레, 여호와 샬롬, 여 호와 라파, 여호와 삼마, 여호와 닛시’ 등등...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 하나 살펴 보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 고 은혜가 되지만... 지금 그 이야기 다하면... (편집자가 싫어 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말은 곧 <하나님 자신>을 의미한다는 것 입니다. 그 이름을 묵상할 수록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더 명확한 인식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인식이 생길 수록 우리 하나님 앞에 감격할 수 밖에 없지요. <거룩히 여김을 받다>라는 말도 살펴 봅시다. ‘거룩’이라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 ‘분리된, 구별된’이 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가 하나님께 사용될 때는 우리는 “비길 수 없네~ 하늘에 별을 놓은 분~”(주 광대 하시네(Magnificent) - 힐송)이라는 찬양을 떠올려 보면 좋습니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구별되어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우리는 하나님과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 하 나님의 도덕적 완전성, 무결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레위기 11장 45절 에서 하나님은 이렇 게 말씀하셨지요.
- (레위기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닮은 자로 계속해서 우리를 세상과 구별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 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위의 설명에 따르자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말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라) 와 닿을 지 모르겠습니다. 냉장고 의 냉동실에 얼음 큐브가 깡깡 얼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완전히 더 깡깡 언 그 얼음을 얼리겠다고 냉장고 의 온도를 아무리 낮춰도 더 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완전히 세상과 구별된 완전하신 분입니다. 굳이 거기에 더 거룩히 여김을 받기 원한다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 고 그런 기도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이상한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불가능한 기도를 ‘최우선순위로 기도하라’라는 주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2.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 질 수 있을까?
그러면 이렇게 뒤집어서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 질 수도 있을까?” 에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더러워 질 수 있어?! 위의 모순과 똑같은 말 아니 에요? 하나님에 이름에 영광을 얼마나 더하나, 얼마나 흠집을 내나... 바다에 물 한바가지 붓는 거나 물 한 바거지 퍼내는 거나 아니에요? 그렇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더렵혀 질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합 니다. (여러분... 나 불안해요... 글을 쓰다 보니 왠지 길어질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편집자님... 나 3번 에 다 못 끝낼 수도 있겠는데요...) 좀 길지만 에스겔서 36장 20-23절을 볼까요?
- (에스겔 36:20–23)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 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 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 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 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논리에 따르자면 ‘하나님의 이름’은 더렵혀 질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요?! 예, 여러분!! 바로 저와 여러분 때문에요.
- 1.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며 거룩하게 살 것을 명령하셨습 니다.(레위기 11:45)
- 2. 그런데 세상 속에서 이스라엘은 거룩하게 사는 것에 실패 했습니다.
- 3. 그리고 하나 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했습니다.
- 4. 이스라엘의 상황과 모습을 본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이름을 주 신 하나님을 비웃었습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준 하나님의 백성들의 타락으로 인해 그 이름이 더럽혀 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하기 위하 여 일을 행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일로 인하여 그 이름의 거룩함을 회복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친히 거룩하게 만드신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어떻게 ‘친히’ 거룩하게 회복시키실까요? 위의 구절과 이어지는 에 스겔서 36장 24-28을 살펴 봅시다.
- (에스겔 36:24–28)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 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 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 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 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더렵혀진 내 이름을, 그 이름으로 인해, 내가 친히 회복시키겠다!”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나와 언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멸망한 너희를 내가 구출하겠다.(구원) 너희가 스스로 깨끗하 게 할 수 없으니 내가 씻기고 정결케 하겠다.(속죄) 너희가 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너희 안에 성령을 주어 중심부터 변화시키겠다.(거듭남) 그리고 너희 안에 둔 성령으로 인하여 너희가 내 율례를 행하게 만들 것 이다.(성화)” 예, 여러분!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만드시면서 더러 워진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시키십니다.
소결론 :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다짐의 기도
정리를 하자면, 원래 하나님의 이름은 더럽혀질 수 없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당신의 이름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은 더렵혀 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 그 이름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포로가 되었습니다. 징게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며, 세상은 이 백성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을 비웃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친히 자기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그 이름을 가진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주여! 우리를 이 포로된 자리에서 구원 하소서!!”와 같은 기도가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최우선으로 기도하라고 주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떠올릴 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저 맹숭맹숭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더 높여 드렸으면 좋겠네 요”가 아닙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이 죄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 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 구원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그 구원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기를 다짐합니 다, 성령님! 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나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어렸을 적에 유치부에서 기도를 배울 때 다섯 손가락을 사용해서 기도의 순서를 배웠습니다. 엄지 손가 락을 펼치며 “하나님!”이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검지를 펼치며 “감사”하라고 하지요. 그리고 중지 를 펼치며 “회개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감사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 하신 그 은혜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그 죄에서 구원하셨음에도 구원 받은 백성답게 살지 못함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의 크심과 높으심과 거룩하심 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감격하고 즐거 워 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신 구원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기를 위해 분투하는 삶으로 결 단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첫번째 기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