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수요일 오전. 매주 그렇듯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메일함을 확인해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동글레터가 도착해있기 때문이다.
“그리니님의 스무살은 어땠나요?”
아, 이번 호는 스무살의 시작에 관해 다루었구나. 내 20살은 어땠더라? 잠시 회상에 잠기다가도 이내 동글레터를 제작하는 팀원이기에 레터가 무사히 발행되었는지 찬찬히 뜯으며 읽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다.
최근 22또래 인터뷰를 맡게 되어 그들과 만나 직접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었다. 너도나도 인터뷰는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어딘가 들뜬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모든 것을 도전해볼 수 있는 ‘시작’이라는 주제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담이지만 우리는 MBTI를 얘기할 때 특히 즐거웠고 하나가 되었다) 적당히 준비해 간 질문들이 부끄러울 만큼 돌아오는 그들의 대답은 훨씬 멋있고 예상을 뛰어넘어 매 순간 인터뷰어를 감탄하게 했다.
내용에 다 싣지 못했지만, 주체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지민, 자리가 주는 책임감을 느끼고 싶어 과대를 해보고 싶은 하나, 이미 많은 버킷리스트가 쌓여 있는 준혁,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은 영한의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빛들은 하나같이 반짝여 괜히 내 마음마저 덩달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이 자리를 빌려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준 22또래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정리하기 위해 녹음 파일을 꺼내 들었다. 듣는데… 이게 웬걸. 본인의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는 한 사람의 목소리만이 있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면 좋겠지만 예외는 없이 나였고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었다고 에두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그때만큼은 난 거의 그들과 같은 스무살이었다. 무슨 내용을 그렇게 신나게 나눴냐고 물어보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결국, ‘시작’에 관한 내용이었다. (너무 두루뭉술했나요) 이미 시작했거나 시작해보고 싶은 것을 나누다가 그만 급발진해버리고 만 것이다. 듣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시작에 대해, 그것도 가족도 아닌 초면인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게 되었는지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시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달리기 계주를 위해 출발선 위에 섰을 때, 시작 신호를 알리는 총성을 듣기 전까지 극도의 긴장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건 큰 총소리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최초로 고백하건대, 나는 좀 남다른 겁쟁이다. 12월 31일, 23:59에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정확히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낀다. 책 한 권을 소화해내지 못할까 봐 좋아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길 포기한다. 잔뜩 어질러진 방을 바라보며 완벽하게 치울 수 있는 방법을 고사하다 결국 제풀에 지쳐 누워버린다.
그렇게 방 정리는 물 건너가고 깔린 물건들은 울고… 흠흠. 큼직한 건 물론이고 이렇게 사소한 곳에서도 긴장과 피로를 느껴버리니 무엇 하나 시작하기 어려워한다. 또 ‘시작’은 매번 ‘작심삼일’이라는 친구를 데려와 시무룩하게 만든다. 어차피 3일도 더 못 갈 일이니, 주변에 알리기보단 아무도 모르게 끝내버리기를 반복한다. 나열해놓고 보니 겁쟁이가 맞는 거 같다. 부끄럽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용기 얻고 가시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해보려 한다.
무사히 도착한 레터를 닫아두고 생각한다. 4월 호를 준비하면서 ‘시작’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쓸 단어를 몰아서 쓴 느낌이 들 정도다. 그래서 내성이 생겨 두려움이 잠시 사라진 건가 싶다가 시작을 함께해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시작에는 항상 공동체가 함께 있었다. 입학과 취업, 사역의 출발선 위에는 홀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이 서 있었다. 실질적인 도움이나 기도로 응원해주었기에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두려움이 사라진 근본적인 이유를 찾았다.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머리는 아팠지만, 귀한 걸 찾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하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시작을 두려워하고 있는 독자님께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혼자가 아니에요! 같이 시작해봐요. 우리!